‹ 칠판으로

원에는 도(度)가 없다

2026. 7. 5. · 수학 · 물리 관

우리가 각을 30도, 60도, 90도로 부르는 건 초등학교에서 각을 처음 익히기 위해 빌려온 편리한 눈금이었다. 한 바퀴를 360으로 쪼갠 그 360은 옛 바빌로니아가 60진법으로 정한 관습이지, 원이 스스로 정한 수가 아니다.

원의 성질에는 ‘도’가 없다

원의 정의는 딱 두 마디다. 중심, 그리고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. 그게 전부다. 이 정의 어디를 뒤져도 “360”이라는 숫자는 없다. 원이 아는 것은 오직 반지름과, 그 반지름이 그리는 호의 길이뿐이다.

반지름여기 어디에도 360은 없다

억지로 끼우면 탈이 난다

직각삼각형을 재거나 각도기로 잴 때는 도(度)도 아무 문제가 없다. 탈은 삼각함수를 본격적으로 다룰 때 — 특히 미적분에서 터진다. sin\sin의 변화율(미분)이 딱 cos\cos이 되는 것은 각을 라디안으로 잴 때뿐이다. 도(度)로 재면 sin(x)\sin(x^\circ)의 미분에 0.01745(=π/180)0.01745\ldots\,(=\pi/180)라는 군더더기 상수가 달라붙는다. 작은 각에서 sinxx\sin x \approx x가 성립하는 것도 라디안에서만이다. 자연이 원래 1이라고 말하는 자리에, 도(度)를 쓰면 0.01745가 끼어든다.

라디안은 원에서 그냥 나온다

그럼 원이 스스로 가진 유일한 자, 반지름으로 호를 재보자. 반지름을 자 삼아 호가 몇 개 들어가는지 세는 것 — 그게 각의 크기다.

호를 늘린다
호의 길이 = 1.00 × 반지름
이 값이 곧 각의 크기 = 1.00 라디안
반지름1호를 쭉 펴서 반지름 자에 대면 ↓ (눈금 한 칸 = 반지름 하나)123456π · 반 바퀴2π · 한 바퀴

반지름 하나 길이만큼의 호가 만드는 각 = 1 라디안. 계속 늘리면 여섯 개하고 조금 더, 6.286.28\ldots에서 딱 한 바퀴가 된다. 여기엔 도(度)가 한 글자도 없다. 각의 크기는 그저 “호가 반지름 몇 개인가”일 뿐이다.

π조차 각도가 아니다

같은 눈금 위에서 반 바퀴를 보자. 그 호의 길이가 바로 π\pi (≈3.14). π\pi는 “180도”가 아니라, 반지름 1인 원에서 반원 호의 길이다. 곧게 편 지름(반지름 2개)보다 살짝 긴, 3.143.14\ldots 반지름.

반원 호 = π (≈3.14 반지름)지름 = 반지름 2개

라디안이 각도라기보다 비율인 이유가 여기 있다. 각 = 호 ÷ 반지름 — 길이를 길이로 나눴으니 단위가 없다. 그래서 원이 커지든 작아지든, 각만 같으면 이 값은 꿈쩍도 안 한다. 초록 원을 마음껏 키우고 줄여보자.

각도 θ (공통)1.57 rad
초록 원 크기1.80
단위원 (주황)
반지름 1 · 호 1.57
초록 원
반지름 1.80 · 호 2.83
호 ÷ 반지름
1.57
① 실제 길이 — 다르다초록 원 호 = 2.83단위원 호 = 1.57② 반지름 단위 — 똑같다초록: 반지름 1.57개단위원: 반지름 1.57개 (같음!)→ 이 개수 = 라디안. 크기와 무관.

실제 호 길이는 원 크기를 따라 출렁이지만, “반지름 몇 개”는 변하지 않는다. 호와 반지름이 함께 커지니까.

라디안은 각을 재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, 원이 쓰는 모국어다. 도(度)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잠깐 빌려온 손님일 뿐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