원에는 도(度)가 없다
우리가 각을 30도, 60도, 90도로 부르는 건 초등학교에서 각을 처음 익히기 위해 빌려온 편리한 눈금이었다. 한 바퀴를 360으로 쪼갠 그 360은 옛 바빌로니아가 60진법으로 정한 관습이지, 원이 스스로 정한 수가 아니다.
원의 성질에는 ‘도’가 없다
원의 정의는 딱 두 마디다. 중심, 그리고 중심에서 같은 거리에 있는 점들. 그게 전부다. 이 정의 어디를 뒤져도 “360”이라는 숫자는 없다. 원이 아는 것은 오직 반지름과, 그 반지름이 그리는 호의 길이뿐이다.
억지로 끼우면 탈이 난다
직각삼각형을 재거나 각도기로 잴 때는 도(度)도 아무 문제가 없다. 탈은 삼각함수를 본격적으로 다룰 때 — 특히 미적분에서 터진다. 의 변화율(미분)이 딱 이 되는 것은 각을 라디안으로 잴 때뿐이다. 도(度)로 재면 의 미분에 라는 군더더기 상수가 달라붙는다. 작은 각에서 가 성립하는 것도 라디안에서만이다. 자연이 원래 1이라고 말하는 자리에, 도(度)를 쓰면 0.01745가 끼어든다.
라디안은 원에서 그냥 나온다
그럼 원이 스스로 가진 유일한 자, 반지름으로 호를 재보자. 반지름을 자 삼아 호가 몇 개 들어가는지 세는 것 — 그게 각의 크기다.
반지름 하나 길이만큼의 호가 만드는 각 = 1 라디안. 계속 늘리면 여섯 개하고 조금 더, 에서 딱 한 바퀴가 된다. 여기엔 도(度)가 한 글자도 없다. 각의 크기는 그저 “호가 반지름 몇 개인가”일 뿐이다.
π조차 각도가 아니다
같은 눈금 위에서 반 바퀴를 보자. 그 호의 길이가 바로 (≈3.14). 는 “180도”가 아니라, 반지름 1인 원에서 반원 호의 길이다. 곧게 편 지름(반지름 2개)보다 살짝 긴, 반지름.
라디안이 각도라기보다 비율인 이유가 여기 있다. 각 = 호 ÷ 반지름 — 길이를 길이로 나눴으니 단위가 없다. 그래서 원이 커지든 작아지든, 각만 같으면 이 값은 꿈쩍도 안 한다. 초록 원을 마음껏 키우고 줄여보자.
실제 호 길이는 원 크기를 따라 출렁이지만, “반지름 몇 개”는 변하지 않는다. 호와 반지름이 함께 커지니까.
라디안은 각을 재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아니라, 원이 쓰는 모국어다. 도(度)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잠깐 빌려온 손님일 뿐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