원을 풀면 파동이 된다
지난 공책 마지막에 씨앗 하나를 박아뒀다. 점이 원을 빙글빙글 돌 때 벽에 진 그림자(높이)를 시간축으로 쭉 늘어놓으면, 그 궤적이 사인 곡선이 된다 — 고 써놓고 다음으로 미뤄뒀다. 그 “다음”이 이 글이다.
원과 파동. 겉보기엔 남남이다. 하나는 빙글빙글 도는 동그라미고, 하나는 위아래로 출렁이는 물결이다. 그런데 둘은 같은 것의 앞모습과 옆모습일 뿐이다. 그걸 눈으로 보자는 게 오늘의 전부다.
그림자를 시간 위에 눕힌다는 것
2편에서 세로 그림자(높이)가 였다. 점이 한 자리에 멈춰 있으면 그림자도 한 값에 멈춰 있다. 그런데 점을 계속 돌리면 그림자는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출렁인다.
이 출렁임을 한 화면에 가둬 두지 말고, 시간이 흐르는 대로 오른쪽으로 밀면서 기록해보자. 지금 이 순간의 높이를 오른쪽 끝에 한 점 찍고, 다음 순간의 높이를 그 옆에 찍고… 점의 높이를 시간축 위에 계속 눕혀 나가면 무엇이 그려질까.
돌려보면 안다. 재생을 눌러 점이 한 바퀴 도는 동안 오른쪽에서 무엇이 자라나는지 보라.
왼쪽 점의 높이(초록 세로선)가, 오른쪽으로 뻗은 수평 점선을 타고 그대로 펜에 전달된다. 펜은 그 높이를 시간 위에 찍고 — 점이 한 바퀴(2π)를 돌면 오른쪽엔 완전한 사인 곡선 한 마디가 완성돼 있다. 다시 한 바퀴 돌면 똑같은 곡선이 또 한 마디. 원운동이 반복이니, 파동도 반복이다.
여기서 조용히 벌어진 일이 하나 있다. 우리는 곡선을 “그린” 게 아니다. 원을 도는 점의 그림자를 시간 위에 받아 적었을 뿐인데 사인 곡선이 저절로 나왔다. 사인 곡선은 원의 옆모습이었던 것이다.
왜 하필 이 모양인가 — 빠르고, 느리고
곡선을 자세히 보면 꼭대기와 골짜기 근처에선 완만하고, 한가운데(높이 0)를 지날 땐 가파르다. 이것도 원을 보면 그냥 보인다. 점이 맨 위(θ=π/2)를 지날 땐 거의 옆으로만 움직여서 높이가 잘 안 변한다 — 그래서 완만. 반대로 점이 오른쪽 끝(θ=0)을 지날 땐 거의 수직으로 솟구쳐서 높이가 확확 바뀐다 — 그래서 가파르다.
사인 곡선의 그 특유의 매끄러운 굴곡은 디자인이 아니라, 등속으로 도는 점을 옆에서 본 결과다. 억지로 그린 곡선이 아니라 원이 시킨 모양이다.
남은 이야기 둘 — 형제와 진폭
이 글은 세로 그림자(sin) 하나만 눕혔다. 그런데 2편엔 그림자가 둘이었다. 바닥 그림자 를 똑같이 시간 위에 눕히면?
똑같이 생긴 파동이 왼쪽으로 딱 한 발(π/2)만큼 밀려서 나온다. 코사인은 사인과 다른 함수가 아니라 출발 위치만 다른 같은 파동이다. 점이 맨 위에서 출발했느냐, 오른쪽 끝에서 출발했느냐의 차이일 뿐. (이 “밀림”을 위상이라 부른다 — 그건 그것대로 한 편 값어치가 있다.)
그리고 2편에서 또 하나 미뤄둔 질문. 반지름을 1이 아니라 더 키우면? 그림자도 그만큼 커지니, 사인 곡선의 높이(진폭)가 덩달아 커진다. 원의 반지름이 곧 파동의 진폭인 셈이다. 도는 속도를 바꾸면 파동이 촘촘해지거나 성글어지고(주파수), 출발 위치를 바꾸면 파동이 밀린다(위상). 원 하나에 파동의 문법이 전부 들어 있다.
그 이야기는 — 다음 공책에서.
사인 곡선은 그리는 게 아니라, 원을 도는 점의 그림자를 시간 위에 받아 적으면 저절로 나오는 것이다.